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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황석산성 - 함양황암사 | 황석산성 전투에서 순국의 맹세 위장을 모신 사원

by news-updates-live 2025. 3.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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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양 만월의 2일째는 선비문화탐방로를 걸은 뒤 주변에 있는 문화유적을 방문했는데, 그 중 하나가 황암사입니다.

 

황암사는 1597년 정유재라고 할 때 왜적과 싸운다. 이 싸움을 황석산성 전투라고 하지만 조선을 다시 침략한 수만명의 왜군이 음력 에 카토, 쿠로다 등의 지휘로 황석산성을 공격하면서 일어난 3일간

 

함양황암사 경남 함양군 서함60 수요일 탐방시간 20분 주차 가능/입장료 무료/화장실 있음

황암사 아래에 넓은 주차장이 있으며, 이용 가능한 화장실도 있지만, 황암사를 향해 오른쪽에는 황석산 등산로도 있습니다.

 

황암사 홍살문 앞에 주차한 뒤 표지판을 읽고 이곳이 황석산성에서 순국한 곽준, 조종도 등 수천명의 선렬의 위패를 봉안한 곳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황석산성 싸움 때 안음현현감 곽준과 전함양군수의 조종도는 소수의 병력을 이끌고 인근 7개의 고(거창, 초계 , 합천, 삼가, 함양, 산청, 내의) 주민을 모아 왜군에 대항했습니다.

 

홍살문 위에 계단 위의 높은 곳에 충의문 삼문이 보입니다.

 

1985년, 지역의 율림들이 의지를 모아 황석산성 순국선 열추모위원회를 발족해, 해마다 추도제를 보냈다고 합니다. 1987년, 황석산성이 사적 제322호로 지정되면, 지역민이 정념을 모아 2001년 호국의 총을 정리해, 사당을 복원했습니다.현재는 매년 음력 에 순국선열의 정신을 위로하는 제사를 보냅니다.

 

충의문에 들어가면, 중앙에 계단 위에 황암사가 있습니다.우측에는 2001년에 지어진 황암사 중건 기념비가 있고, 왼쪽에는 같은 해에 지어진 황석산성 순국선 열의 충혼비가 있습니다.

 

황암사 중건 기념비 왼쪽에는 황석산성의 치열한 전투 상황, 황암사를 중건하게 된 이유와 과정을 자세하게 기록해 놓았어요.

 

황석산성 순국선렬충혼비의 뒷면에는 구상시인이 세운 긴 문장이 새겨져 있습니다.

 

역광이므로 사당의 경치가 흐려져 있습니다.

 

곽준은 조선 중기 문신으로 임진왜란 때 김명 등과 함께 출전해 공을 세워 1594년에는 안음 현감으로 부임하여 황석산성을 축조하였습니다.

 

사원에서 바라보면 충의문 건너편의 산세가 독특합니다. 수호에 재직하게 됩니다. 정유재와는 곽준과 함께 황석상성에서 왜군과 싸우는 성이 함락되면 순수했고, 뒤에 이조판서에 추증되었습니다.

 

사원의 뒤로 돌아가면 계단의 상부에 요시카쿠가 있습니다.

 

요시카쿠에서 본 사당의 뒷모습입니다. 조상들이 생명을 던져 지킨 나라에 살고 있다는 생각에 눈이 붉어집니다.

 

황암사를 탐험하는 데 시간이 걸리지 않습니다.

 

홍살문을 향해 오른쪽 주차장 끝에 조종도를 기리는 시비가 있습니다.

 

전면에 쓰여진 글은 공동산 외생 유행, 순원성중사역영입니다. 공동산 밖에 사는 것이 행복하다고 생각하지만 장승과 호원처럼 성을 지켜 죽는 것도 영화다. 공이 의로운 죽음을 선택하는 애국 충성스러운 성 아래에 시비를 건설하게 되었다고 밝혔습니다. *공동산 : 진시환이 신선을 구한 산 * 장승, 호원 : 안록산은 내가 성을 지키는 죽은 당나라의 충신

 

시비의 옆에 이분의 길이 있습니다.왼쪽은 황석산 등산로로, 오른쪽은 라온 캠프장에 가는 길입니다.

 

황암 사기점 황석산 정상(1,190m)까지는 km. 어제는 기념일이었습니다. 현재 제가 누리고 있는 모든 일은 순국선렬의 희생을 바탕으로 가능하다는 생각에 마음이 숙련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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